M에게 있어 S는 여러 의미로 유일한 존재였다. 자신을 받아 줄 남자 따위는 세상에 없다. 고로 자신과 여기까지 얽힐 남자도 더는 없다. 단편적인 생각으로서는 그랬다. M은 눈앞에 놓인 술을 재차 들이켰다.
기구한 삶이라고만 여겼다. 흔하디 흔한 연민이나 동정, 온갖 추한 감정이란 것은 모조리 그러모아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본인을 책망했으나 변하는 일은 없었으므로. 변하고 싶지 않아서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변하고 싶어서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못박힌 인생을 재차 쌓아 올리는 일보다, 주저없이 망치는 것이 훨씬 간단했다.
그리고, 어쩌면 S는 그 일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인생을 망치기 위해 그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문득 슬픔이 몰려 왔다. 이게 술에 취한 건지, 아니면 제 인생의 기구함에 취한 건지는 몰라도. 모쪼록 좋은 감정은 아니었다. 그러니 더욱이 M은 그 감정에 빠져들었다. 아, 그 사람.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그때는 왜 그랬고, 지금은 왜 이렇게 대해 줄까. S. S, S! 그의 이름을 떠올릴 때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몽환적인 감각이 이따금 발끝을 감싸고는 했다. 이건 뭔가 이상해.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M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니, 물론 정확히는 조금 더 미쳐버린 것에 가까웠겠지만. M 본인만큼은 눈이 번쩍 떠졌다고 생각했다.
고백해야해!
그래, 조금 더 망가지기 위해서. 혹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자신은 필시 S와 함께여야만 옳았다. 그는 나를 버려서는 안 된다, 고 생각했으므로. 결코 버려서는 안 될 영원함을 각오하고 싶다면, 그런 관계가 되어야 했다. 지금 당장은 우리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우리라고 해도 모르는 시점이다. 그러니 그걸 확실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한다고 뱉어야 할 것이다.
영원을 맹세하기 위해.
술에 취한 M이 S의 앞에 섰을 때, S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M의 어깨를 붙잡았다. 님,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이 시간에 말이야, 추워 죽겠는데···. 대충 집에서 입던 옷 위로 코트 따위를 줏어입은 M이 제 목도리를 풀어 S에게 걸친다. 지만 따듯하게 입으면 다인가, 툴툴거리지만 내심 M의 옷이 두텁지도 않다는 것을 주의깊게 살핀 것이었다.
그래, 무슨 얘기하려는지 들어나 보자.
중요한 얘기예요, 네에에? 그러니까, 똑바로, 들으란 말이에요~······
혀가 꼬부랑 굽어진다. M의 주정에 가까운 목소리에, S가 그럼 그렇지. 하는 낯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빨리 공원으로 나와 달라, 는 식의 메신저를 받고 곧장 뛰어왔지만······ 어째 오타가 그렇게 많더라니, 술에 이렇게나 취해 있던 것이다. S는 묘한 탈력감을 느꼈다. 솔직하게 서술하자면, S는 M을 걱정했다. 중요한 얘기니 하는 메신저부터, 오타, 이 늦은 시간에 공원으로 와 달라는 것까지. 혹여 큰일이라도 난 것일까봐서 빠르게 뛰쳐나온 보람도 없는 지루한 반복에 질려버렸다. S는 길다란 시계 바늘을 흘끔 보다 고개를 돌렸다. 님. M씨. 들으세요. 어깨를 살짝 흔들자, 조금 졸고 있던 M이 고개를 컥하고 올렸다.
네? 네에. 말하세여.
그래서 뭐 어쩌자고. 나 들어가? 왜 말을 안 해, 본론을 말하란 말이야.
속 터져······.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M이 수줍게 웃었다. M은 그대로 S의 뺨에 쪽, 입맞추고는 실실 웃는 소리로 말했다. S는 반사적으로 제 뺨을 쓸어내리면서 M을 보았다.
좋아해요······.
우웁, 욱, 웨에에엑······. 곧장 M이 속에 든 것을 몽땅 토해냈다. 최악의 고백이었다. S는 그렇게 생각한다.
M씨. M씨? 야, 님, 님! 일어나!
M이 정신을 차리면, 익숙한 천장이었다. S의 집. 침대 위다. M은 깨질 것 같은 제 머리를 더듬거리며 어제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했다. 솔직히, 떠올려지지는 않았다. M이 S를 돌아본다.
저 왜 여기 있죠?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언제까지 잘 거야? 일어나, 얼른!
S가 M을 쫓아내듯 화장실로 들여보냈다. M은 얼결에 받은 칫솔로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나와서 아침밥을 먹었다. 깔끔하게 좀 먹어. S가 인상을 찌푸린 채 M의 뺨을 문질러 케첩을 닦았다.
그······.
S라고 불러. 이제.
여태껏 호명을 피하는 데에 한순간도 말을 얹지 않던 S의 첫 잔소리였다. M이 놀란 눈치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요?
왜요는 무슨···.
S의 입이 달싹인다. M은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나도 너 좋아해.
네?
입에 밀어넣던 스크램블 에그가 투둑 떨어진다. 최악의 고백이었다. M은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