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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

간직

by 다오닝 2024. 12. 2.

드디어 홀로 남게 되었다. 이 공간에는 어떤 물건도 생물도 존재하지 않고, 공간이라는 말로 한정해 두었으나 그에 갇히지 않을 정도로 너른 곳이자 아주 좁은 곳이기도 한데, 그곳에 존재하는 나 또한 완연히 살아 있다고 이를 수 없다. 끝없이, 끝없이 생각만을 반복한다. 나는 이것이 신벌이라도 되는가 생각했다.

혼자 남는다는 것은 그런 법이다.

그렇다면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내가 벌을 받는다면 가장 먼저 달려와 줄 사람. 내가 벌을 받는다면 그 이유일 사람. 내가 벌을 받는다면, 내게, 손 뻗어 줄 사람. 만일 내가 그 손을 잡지 않더라도, 분명 내가 버틸 수 있도록 순진하고도 기꺼운 말들을 늘어놓을 사람. 그러므로 내가 특별히 여기는 사람,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뱉어낼 수 없는 사람. 가벼운 감정이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무거운 무엇인가가 속에 턱 얹혀 도무지 어떻다 말해 줄 수가 없는 사람.

당신.

당신에 대해 나는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있다면 나는 외롭지 않을 텐데. 당신만 있었더라면, 나는 족했을 텐데.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나는 당신을 탐하지 아니하고, 속박하지 아니하여야 옳다. 고로 나는, 벌을 받는다면 당신을 가장 먼저 빼앗겨야 한다. 그렇게 지금이 만들어진 것이다. 천장을 향해 손 뻗어 주먹 쥐었다 편다. 나는 당신에게 감정을 고할 수 없어 솔직하지 못하매 지옥에 떨어질 거야. 언제인가 우스갯소리로 했던 것이 심장을 옭아맨다.

당신도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까.

당신도 내가 그리울까? 당신도, 당신도 영영 나를 생각하는 지옥에 빠졌을까.

그렇다면 영영 자비 없기를. 영영 지옥에 빠져 살기를. 그렇게라도 내 생각을 아주 오래 하기를, 바라건대 나는. 이 지옥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당신을 생각했을 테니까. 당신 또한 나를 생각하는 지옥에 갇혀 아주 오랜 시간을 허비하고, 종래에는 인정하기를 바란다.

그래, 나는 당신도 지옥에 떨어지기를 바라.

나를 기억해. 어떤 형태라도 좋아. 증오해도, 애정해도, 잊고 싶어해도, 기억하고 싶어해도.

조금 더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해.

 

이런 말로밖에는 마음을 전할 수 없는 나를 기억해.

이런 말로를 겪어 끊어진 우리를 기억해.

우리는 여전히 우리로서, 나는 여전히 나로서, 당신은 여전히 당신으로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해.

내가 당신에게 고백할 일은 결단코 없다고.

 

 

덜컹이는 전차에 몸을 싣는다. 안내 방송으로 들리는 바에 따르면, 전차는 꽃밭을 지나고 있다는 듯하다. 우리는 창문을 내다본다. 군청색 꽃이 살랑이는 일 없이 못박혀 고정된 듯 빳빳이 서 있다. 그런 꽃이 수천, 수만 개는 피어 있다. 무심코 감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묵묵한 얼굴로 꽃밭을 내려다본다. 어느새 꽃밭은 풀밭이 되었다가, 단풍잎 따위가 가득 피었다가도,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눈이 쌓이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설산을 지난다. 전차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당신은 아무런 답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당신은 아무래도 진실된 당신이 아닌 탓이다. 내 상상 속 당신은 언제나 이렇게 침묵한 채 나를 보았다. 나는 그것만으로 족했으므로, 당신이 어떤 말도 하지 않아도 좋았으므로. 당신은 영원히 침묵하게 되었다.

이곳은 아무래도 내 지옥의 일부인 듯하다.

내가 당신을 너무나 오래 생각한 죄로, 당신을 눈앞에 둔 채 하고 싶은 말을 뱉지 못하고,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하는 여느 평범한 지옥에 도달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차는 언제쯤 멈추게 될까, 창밖에 몸을 기울여 확인하는 당신의 어깨를 붙잡는다. 위험하잖아. 찬바람이 뺨을 스친다. 어느새 당신의 낯은 추위를 사유로 벌겋게 물들었다. 나는 그런 당신의 뺨을 무심코 문지르고, 코끝을 매만진다. 발갛게 물든 손끝을 붙잡아 서로 엮고는, 낯을 가까이 대어서 이마를 서로 지긋이 부딪힌다. ···지옥까지 와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전부 우스울 뿐이다.

어느새 전차는 멈추었다. 덜컹이며 문이 열리거든, 나는 당신의 팔을 잡아 이끌어 바깥으로 나선다. 앙상한 흰 나무들이 잔뜩 늘어선 눈밭이다. 아득하게 높은 설산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호수는 얼어 출렁이는 일 없고, 죽은 단풍잎이 이따금 떨어졌다. 이런 초라한 곳에 당신을 데려와도 괜찮았던 것일까, 나는 돌아본다.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낯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설산에 오를 거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뱉는다. 그러나 의문의 말은 돌아오지 않는다. 당신은 그저 고개를 기울일 뿐이다. 영락없이 말할 수 없는 저주를 받은 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눈썹을 가만히 누그러트렸다가, 다시 본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고개를 돌린다. 이내 설산의 입구를 자박자박 밟아 걷기 시작했다. 허연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어째서 날 따라오는 거야. 느긋하게 물으면, 여전히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하듯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설마 내가 널 두고갈까봐? 그래, 나는 여전히 그 말의 화자가 누구인가에 상관하지 않고. 당신은 언제든 나를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지옥이므로, 당신이 그 말을 더는 헤아리지 못한 채 떠나더라도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 말이 여전히 우리 사이에 남아 있다면, 고로 당신이 곁에 있노라면. 나는 필시 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다.

그러지 마.

그래, 그러지 말라고. 나는 이렇게라도 말할 수밖에 없는 내가 짜증이 나는 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삼킨다. 너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 거야, 라고. 나를 고통 주기 위해서라면, 너같은 건 없는 게 나아. 나를 지옥 불구덩이에 처박고 싶다면, 조금 더 진심을 다해서 해. 나를 떨쳐내고 도망쳐, 어서, 날 잊었다고 말하고, 상처를 주란 말이야. 직접 내뱉지 못한 말이, 속내에 나열된다.

그러므로 당신은 답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모든 건 환상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어쩐지 허탈해져서, 당신의 팔을 놓는다. 따라오든, 그러지 않든. 이제는 마음대로 해. 울적한 마음은 결국, 당신과 대화할 수 없음에서 비롯되었다.

 

 

설산의 절벽을 내려다본다. 꽃이 한 송이 피어 있다. 이전에 본 군청색 꽃이다. 나는 그것을 꺾어, 끝내 나를 쫓아온 당신의 손에 쥐여 준다. 당신은 그것을 소중히 그러안고, 후, 숨을 뱉는다. 이제 어떻게 할래. 물음에 당신은 여전히 답이 없고, 나는 그가 뱉지 않은 답을 알고 있다. 당신을 조용히 끌어안는다. 우리의 품에서 군청색 꽃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바로 옆으로는 절벽이 보이고, 아득한 저 너머로는 아마 지옥의 끝자락이 있을 테다.

우리 만남도 여기까지일 터였다. 나는 당신을 끌어안은 채, 절벽에 몸을 내던진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가르고, 당신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비명 한 번 내뱉지 않는 당신을, 조금 더 세게 끌어안는다. 떨어지지 않도록, 홀로 추락하지 않도록. 당신은 그 의도를 아는가 모르는가, 내 품에 조금 더 안겨 온다. 힘이 드는 숨을 뱉었다. 가슴이 조여 오고, 호흡하기가 차츰 어려워진다. 몽롱한 머리로는 솔직하지 못한 말만을 뱉었다.

지옥에 함께 떨어져 줘.

그리고 날 기억해.

영원히 변치 않겠다고 맹세해.

죽음 따위는 우리를 갈라놓지 못한다고, 어서 말해.

 

당신은 아무런 말 없이 웃었다.

그것만이 대답이었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듯 꿈속으로 빠져든다. 눈앞이 컴컴해지면, 품에 당신을 안았던 온기만이 잔재한다.

 

그리고 다시, 지옥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제 삼자의 눈으로서, 나와 당신을 바라본다. 어리석은 짓이다. 무엇을 해도 지옥은 끝맺지 아니하고, 나는 영원히 우리가 우리로서 남아 죽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끝내고자 했던 마음도 이제는 없는데, 과거의 나는 기억을 잃은 듯이 그것을 되풀이하기만 한다.

나는 오래도록 당신을, 그리고 우리를 생각한다. 아니, 당신과 우리만을 생각한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이라니. 바라지도 않고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고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없다. 있더라도 말할 수 없다. 그저 언젠가, 정녕히 지옥이 끝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여즉 버티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아무래도,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성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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