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멍멍

專心專力

by 다오닝 2024. 12. 24.

장대비가 멎지 않는 여름이다.

아직 장마철도 아닌데 비가 죽죽 내린다. 우중충한 교실 창 너머로 오밀조밀 튄 빗방울에 사람들 얼굴 하나하나가 비친다. 하나, 둘. 리코 양, 잇테이 군. 저건 선생님 얼굴······. 한 명 한 명 낯을 짚어가며 돌아보던 미카게 레오는 문득, 지루하다고 느꼈다. 이 모든 것이 따분하고, 즐거운 일 하나 없어 시시하다는 감상이 들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기쁜 일이 있으면 했다. 비를 실컷 맞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일상을 일상답게 보내고 싶었다. 이깟 지루한 방식이 아니라.

그리고 그런 일상을 일상답지 못하게 바꾸는 사건은, 지루한 학교를 벗어나려던 방과후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미카게 레오는 홀린 듯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차츰 자신의 귀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그 소리는 어느새 제 자리를 찾아 꼭 맞는 곳에 맞추어 들어가듯, 미카게 레오의 마음에 자리잡았다. 훅, 소름이 끼친다. 비가 내리는 탓일까, 아니면 피아노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바람 탓일까. 어느 쪽이건 미카게 레오는 마음이 동했다. 머리털이 삐쭉 서는 기분을 느끼면서, 마침내 미카게 레오의 손이 절로 음악실의 문을 연다.

창가 자리에 놓인 피아노에, 있을 리 없는 볕이 쬐어드는 착각이 인다. 마치 흰 커튼이 베일처럼 키요하라 오토하의 머리칼을 쓴다. 키요하라 오토하는 연주를 마치고, 제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면서 창문을 바라본다. 비가 안 멎네······. 칭얼대는 듯도 들리는 그 목소리는 썩 달게 느껴졌다. 마치, 그가 줄곧 연주하던 피아노의 음율처럼.

···헉, 정신을 차린 미카게 레오가 숨을 들이켠다. 그 소리에 기민하게 키요하라 오토하가 돌아본다. 악보가 흩날린다. 미카게 레오는 차마 숨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뜬다. 키요하라 오토하가 새된 목소리로 놀란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어? 아, 아까부터.

그럼···다 들은 거야? 얼굴이 새빨개진 키요하라 오토하가 우물쭈물거린다. 미카게 레오는 고개를 잠시 기울였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겨우 정신이 현실로 돌아온 듯한 감각이다.

부회장. 피아노도 열심이구나. 대단해,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은걸.

아, 아냐. 내 연주는······

정말이야. 내가 들어 본 연주 중 가장 최고의 연주였어.

키요하라 오토하의 읊조리는 소리는 닿지 않는다. 미카게 레오는 흩어진 악보를 모아 키요하라 오토하에게 내민다. 키요하라 오토하는 어물거리다, 악보를 받아 품에 안는다. 긴 적막이 인다.

있지, 연주 말인데. 나중에 다시 들려 줄 수 있을까? 다음번에도 듣고 싶어.

다음을 기약하자니, 키요하라 오토하는 다시는 연주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 누구에게도 다시금 연주를 들려 주고 싶지 않았다. 다시 적막. 미카게 레오는 그저 키요하라 오토하의 부끄러움을 생각하며, 그 망설임이 다만 가볍다고 치부한 채 사람 좋게 웃는다. 키요하라 오토하는 문득 심장이 불쾌하게 두근거렸다. 그래, 자신이 좋아하던 사람의 저 낯은 분명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키요하라 오토하는 시계를 돌아본다. 시간이 늦었다.

미안. 나, 이만 임원회의에 가야 해서······.

잠깐만, 대답은······

키요하라 오토하는 애써 외면한 채 내달린다. 미카게 레오는 차마 붙잡지 못하고 그저 바라본다.

 

 

너에게라면······ 다시 연주를 들려 줘도 좋을 것 같아. 미카게 군.

그래? 그거 기쁜 걸, 고마워.

가볍게 말하는 것 아냐.

키요하라 오토하의 눈이 곧게 미카게 레오를 향한다. 미카게 레오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키요하라 오토하의 눈을 본다. 감히 시선을 떼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낯이다. 키요하라 오토하의 목소리에는 진정성이 있고, 그렇게 말하는 낯에는 환희가 있다. 그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 미카게 레오를 향한 애정이었므로.

나, 줄곧 미카게 군을 좋아해 왔어.

······.

알고 있어, 미카게 군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

그러니까···.

······응.

······시원하게 거절해 줄래?

엉뚱한 소리였다. 미카게 레오는 썩 곤란한 표정이었지만, 그건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단지 말 한마디 뱉으면 될 뿐인 일. 무엇보다도 전심전력하여 고백해 온 좋은 친구의 말이었다. 거절할 수 있을 리 없다. 미카게 레오가 입을 달싹였다.

······친구로 지내 줘. 지금 이대로가 난 좋은걸.

···응. 그렇게 할게. 앞으로도 잘 부탁해, 미카게 군.

키요하라 오토하는 되려 홀가분하다는 듯 웃는다. 그러는 낯에 울음이 깃드는데, 미카게 레오는 애써 모르는 체 고개를 돌렸다. 청춘이란 그런 법이다, 언제든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어 누구나가 빗물에 잠긴 채 열병에 걸리도록 한다. 미카게 레오도, 키요하라 오토하도 예외는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아직 청춘 속에 산다.

'멍멍'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세상은 연옥  (0) 2025.02.26
幻滅  (0) 2024.12.24
호명  (1) 2024.12.18
간직  (0) 2024.12.02
冒告解  (0) 2024.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