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34 이 세상은 연옥 우리네 삶이란 그다지 경쾌하지는 않았다.만사 불행만을 앞세워 욕보일 생각은 없다. 그러나 부정할 여지 없이, 우리 앞에 놓인 전쟁과 질병, 인간의 온갖 악의 따위는 우리를 마모되도록 만든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인간의 악행이 두려웠고.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악행을 이해하되 결코 용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삶에 있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마음만을 가진다면, 그것은 결코 삶이 아니라.그저 모험일 뿐이다.이제 와서, 고통도 쾌락도 개와 늑대의 시간에게는 같은 것이다. 사람은 고통받고 싶지 않아 하므로, 동시에 개와 늑대의 시간은 쾌락을 좇지 않게 되었다. 단잠에 빠지지 않고 철저히 지정된 시간만큼의 수면을 취한다. 배급받은 식량 이상의 음식을 탐하지 않는다. 기쁜 일과 슬픈 일에 맞선다. 기쁨과 슬픔을 .. 2025. 2. 26. 專心專力 장대비가 멎지 않는 여름이다.아직 장마철도 아닌데 비가 죽죽 내린다. 우중충한 교실 창 너머로 오밀조밀 튄 빗방울에 사람들 얼굴 하나하나가 비친다. 하나, 둘. 리코 양, 잇테이 군. 저건 선생님 얼굴······. 한 명 한 명 낯을 짚어가며 돌아보던 미카게 레오는 문득, 지루하다고 느꼈다. 이 모든 것이 따분하고, 즐거운 일 하나 없어 시시하다는 감상이 들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기쁜 일이 있으면 했다. 비를 실컷 맞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일상을 일상답게 보내고 싶었다. 이깟 지루한 방식이 아니라.그리고 그런 일상을 일상답지 못하게 바꾸는 사건은, 지루한 학교를 벗어나려던 방과후에 일어나기 마련이다.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2024. 12. 24. 幻滅 네 기대에는 이제 환멸이 나.시모가와 린코는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긋지긋해져 버린 이 감정을 어디에 버리면 좋을지 고뇌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게토 스구루가 그런 시모가와 린코의 곁으로 다가왔다. ···데리러 온 것이다. 시모가와 린코를, 지옥으로 끌고가고자 하는 저승사자. 인류가 뱉어낸 사상 최악의 오니. 민간인 112명을 죽인 피도 눈물도 없는 편린. 수지에 독을 매달고 혀끝에는 칼이 있으며 배 안에는 바늘을 가득 삼킨 자. 나의,나의 유일무이 구원자.게토 스구루가 시모가와 린코를 올려다본다. 시모가와 린코는 옥상의 난간 위에 서 있다. 위태로운 작금의 꼴 보고도 게토 스구루는 웃었다.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서로의 낯이라니, 지독하게도 기뻤다. 탁한 은발이 흩날린다. 시모가와 린코가 손 내민.. 2024. 12. 24. 호명 M에게 있어 S는 여러 의미로 유일한 존재였다. 자신을 받아 줄 남자 따위는 세상에 없다. 고로 자신과 여기까지 얽힐 남자도 더는 없다. 단편적인 생각으로서는 그랬다. M은 눈앞에 놓인 술을 재차 들이켰다.기구한 삶이라고만 여겼다. 흔하디 흔한 연민이나 동정, 온갖 추한 감정이란 것은 모조리 그러모아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본인을 책망했으나 변하는 일은 없었으므로. 변하고 싶지 않아서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변하고 싶어서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못박힌 인생을 재차 쌓아 올리는 일보다, 주저없이 망치는 것이 훨씬 간단했다.그리고, 어쩌면 S는 그 일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인생을 망치기 위해 그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문득 .. 2024. 12. 18. 간직 드디어 홀로 남게 되었다. 이 공간에는 어떤 물건도 생물도 존재하지 않고, 공간이라는 말로 한정해 두었으나 그에 갇히지 않을 정도로 너른 곳이자 아주 좁은 곳이기도 한데, 그곳에 존재하는 나 또한 완연히 살아 있다고 이를 수 없다. 끝없이, 끝없이 생각만을 반복한다. 나는 이것이 신벌이라도 되는가 생각했다.혼자 남는다는 것은 그런 법이다.그렇다면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내가 벌을 받는다면 가장 먼저 달려와 줄 사람. 내가 벌을 받는다면 그 이유일 사람. 내가 벌을 받는다면, 내게, 손 뻗어 줄 사람. 만일 내가 그 손을 잡지 않더라도, 분명 내가 버틸 수 있도록 순진하고도 기꺼운 말들을 늘어놓을 사람. 그러므로 내가 특별히 여기는 사람,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뱉어낼 수 없는 사람... 2024. 12. 2. 冒告解 나의 시간이 멈추자, 나는 그것이 내게 있어 큰 축복이라도 되는 듯 굴게 되었다. 무언가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고, 무언가 마시지 않아도 목마르지 않았으며, 잠들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달리면 숨이 차올랐지만, 폐를 찔러오는 고통 따위는 없었고. 되려 상쾌하기까지 했다. 신체적 제약은 없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정신적으로도 나아갈 수 있었다. 아마 이대로 지낼 수 있다면, 나도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래도 희망찬 머릿속은 차라리 안심한 듯 빙빙 돌았다. 그래, 나는 아마 인제 조금은 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한순간에 들이닥친 사람들, 행복, 전부 좋았으니까. 좋은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 눈감자. 그리고 잠시 눈 붙인 순간에, 나는 당신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금 .. 2024. 9. 16.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