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그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건 참 부러운 일이다.
이따금 바랐던 것은, 그의 행복에 자신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남의 행복에 관여한 사람은 덩달아 행복하기 마련이니까, 그런 같잖은 이유로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네 행복에 내가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나의 행복을 떠올릴 때면 네가 곁에 있었다. 내 행복에 네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게 아니라, 행복하고 싶은 건데. 이래서는 행복해질 수도 없고, 행복에 관여할 수도 없다. 제 행복의 구성원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감각에 불행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뭘 바라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바라는 대로만 행동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이상, 멋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속으로 날을 갈았다. 언제까지고 행복을 바라기만 할 뿐이었다. 바랄 수밖에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이를 아득바득 갈고 바닥을 기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나는 솔직해질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제 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안정되자니, 그런 건 용서받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나는 이대로 좋은 걸까? 이대로 만족하면 되는 걸까? 아니, 아니야. 아니다! 죽어야 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죽어도 좋은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 이유는 언제나 알고 있었는데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헤매면서 살아 왔다! 그래, 살아 온 것이다! 내가 옳은 선택을 한다고 늘 믿기 위해서는, 내가 옳고 그름을 줄곧 따져야 한다. 그리고 종래에 선택된 것만을 확신한다. 그렇게 살아 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들였는지, 이제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 온 자신을 동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뼈저리게 알고 있다···.
나는 그러므로 틀리지 않아. 부족하지 않아, 애타지 않아, 너를 기다리지 않아······.
······라고 말해도, 거짓말일 뿐이겠지만.

다친 산크레드를 부축해 오면서, 나는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했다. 이대로 죽으면 어떡하지, 부터 시작해서. 어째서 이렇게 다쳐놓고 제 발로 걸어 온 건지, 여기 올 바에는 치료를 하러 갈 수는 없었는지. 왜 내 앞에 나타난 건지, 괴로운 이 마음은 보상받을 수 있는지. 잡념 섞인 머리는 고의적으로 방어하기만을 위해 애쓴다.
그리고, 산크레드가 겨우 눈을 뜬 채 가물거릴 때에야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안정하고자 가져 온 두 사람 몫의 차도, 다과도 전부 엎질러 버리고 말았다. 몸에 힘이 쭉 풀렸다. 차라리 정신이라도 놓고 싶었는데, 그 지경까지 가진 못해서 어지럽기만 했다. 기다시피 하여 산크레드에게 다가가자, 아직 정신을 덜 차린 산크레드가 여전히 눈을 가물거리면서 물었다.
여기는···?
내 숙소. 네가 주변에 와서 죽어가길래, 내가 데려왔어. 몸은 좀 괜찮아?
산크레드는 기억을 더듬는 듯이 눈을 찌푸렸다가, 감았다가, 도로 느리게 뜨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이내, 탄식. 아. 그랬지. 마음 졸이는 사람은 생각도 않는 무신경한 목소리···. 그 모든 것이 미워져서, 덜컥 산크레드의 뺨을 찔렀다. 찔리는 측의 눈가가 이지러지면서, 이봐, 하고 나를 부른다. 나는 순순히 손을 거두고, 다시 침대 앞에 앉아 산크레드를 내려다본다. 몸 좀 일으키게 도와 줘. 알았어. 산크레드의 상체를 일으켜 앉힌다. 붙잡은 피부는 탄탄하고 매끄럽다. 무거워, 그렇게 말하며 미간을 좁히면, 산크레드는 헛웃음을 친다. 엄살은. 그래, 말마따나 엄살이었다.
다시는 눈을 못 뜰 줄 알았어.
뭐? 내가 고작 이 정도로 죽을 거라 생각했단 말이야?
그런 게 아니라. 알잖아, 네 상태가 어땠는지. 숨도 희미하고, 심장도 너무 빠르게 뛰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아무튼 살아 있으니 됐잖아.
무심한 목소리에 신경이 거슬린다. 눈을 가볍게 찌푸렸다 뜬다. 잃는 건 무섭다. 두 번째 이별 따위, 상정하고 싶지 않다. 헌데 너는 너무 멀게 느껴져서, 이대로 나를 두고 갈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너는 진심으로 신뢰하는 동료이지만 동시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를 두고 갈 테니까. 필시 나와 함께하지 않는 선택지라도 택할 테니까. 언제라도 나를 떠날 수 있으니까. 나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직접 말로 들은 적 없지만, 내 생각에는 그러니까.
왜 하필 나를 찾아온 거야.
뭐?
왜 하필 나였어?
그건···
나를 두고 언젠가 떠날 속셈인 주제에.
그게 무슨 소리야?
맞잖아, 나보다 소중히 여기는 게 있으니까···.
이봐, 영웅님.
그러니까, 나같은 건 네 행복에 들어 있지도 않아서,
잠깐, 좀 들어,
나를 언젠가 두고 떠나버릴 거잖아······.
불안의 극치. 그렇게 한참 독백하는 나를 두고 산크레드는 길게 침묵했다. 얼핏 노려보는 것도 같았다. 거봐, 이렇게 말한 정도로 불쾌해져서. 나는 그럼에도 말해 버린 나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우습다, 우스워···. 전부 놓아 버리고 싶어졌다. 차라리 잘못했다고 빌까, 싶다가도. 네가 내게 빌기를 바라서, 더이상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질려 버린 거겠지. 짙은 무기력이 몰려왔다.
야.
······.
무슨 말이라도 해 봐.
······끝났어?
뭐?
말 다 했느냐고 물었다. 이자크.
···그래.
몸을 바르게 일으킨 산크레드는 다리를 침대 바깥으로 뻗어 걸터앉는다. 이내 팔짱을 낀 채, 단호한 투로 말하기 시작한다.
이자크. 너 말이야, 솔직하게 말하는 건 좋아. 속에 있는 걸 삼키기만 해서는 관계에도 진전이 없을 테고. 다 좋아, 좋은데. 이런 방식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거야.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했는데?
···너도 참 손이 많이 간다니까.
산크레드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이리저리 스트레칭하듯 돌린다. 나는 그것을 잠시 기다리다가, 말 좀 해 봐! 하고, 소리 쳤다. 그러자 정돈되지 않은 문장을 가다듬어 주듯 산크레드는 말을 꺼냈다.
우선 진정부터 해. 너 말이야, 네가 진짜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생각해 봤어?
······.
영웅님. 그럴 때는 그냥 한마디만 하면 돼.
뭐라고 하면 되는데.
날 두고 가지 마. 네 행복에 나도 있으면 좋겠어.
······.
걱정하지도 마. 두고 가지 않을 거고, 내 행복에도, 이자크. 네가 있으니까.
······응.
어째서인지 마음이 울렁거렸다. 산크레드는 묵묵히 밤을 지샜다. 나도, 그의 곁을 지켰다. 단지 그 뿐인 밤이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