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바 없는, 사랑을, 하고 있다.
살다 보면 언젠가 질리는 때도 온다.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졌을 때, 나는 당신을 마주보고 말했다. 나 더는 한나언 씨 사랑하기 힘들겠어. 지친다, 악마도 이런 날이 오나 봐. 한나언 씨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아르메리아는 내가 선택했슴다. 그러니까 그럴 법도 함다. 라고 말했다. 그러니 나는 다시금 고개를 내젓고, 이제 그런 말도 듣고 싶지 않네. 그러자 한나언 씨는, 알았슴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나를 안아 주었는데,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이 속삭여 주었다. 너는 한나언 씨에게 질린 게 아니야, 너 자신에게 질려 버린 거지.
그래, 나는 나에게 질렸다. 한나언 씨를 내 품에 가두고 싶고, 나만 보고 싶게 만들고 싶은 이 지독한 사랑이 지겨워졌다. 이기적인 사랑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편애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좋아하는 것은 만들지 말 걸 그랬다. 좋아하는 감정 따위, 이용할 생각도 말 걸 그랬다. 그랬으면 나도 한나언 씨를 사랑할 일 없었는데.
그러다가도 한나언 씨를 사랑한 것이 아주 크나큰 축복처럼 느껴져서 구역질이 났다. 나는 한나언 씨를 어디까지 아끼고 싶어 하는가? 나는 한나언 씨를 어디까지 사랑하고 싶어 하는가? 어째서? 이 아끼고 아낌받는 사랑 따위, 악마들의 방식이 아니다. 인간들의 방식도 아니다. 이것은 당신의 방식인가? 그래서 나는 당신의 방식으로 하여금 명명되는가?
나를 끌어안은 한나언 씨를 조심스레 마주 안았다. 손끝을 바르작거리며 한나언 씨의 등을 쓰다듬었다. 역시 다 관둘까. 욕망이 고개를 쳐든다. 나는 다시금 말했다. 죽는다면 한나언 씨의 곁이 좋겠어. 그렇다면 한나언 씨는 대꾸했다. 죽고 싶어졌을 때 오면 되지 않슴까. 로맨틱한 말 따위 한나언 씨는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내가 죽으면 슬플 것 같나? 응, 아르메리아는 내가 선택한 것 아님까. 당신은 선택한 바 없는 삶을 살아 왔으므로, 아주 지당한 사유였다. 그런데도 그런 당신이 아주 가엾게 느껴져서, 조금 울고 싶었다. 당신은 아주 단단한데 나는 당신을 가련하게 보고 있었다.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인데 아주 연약하게만 느껴져서, 나는 평생 당신을 보호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전부 관두자.
아낀다면 못할 짓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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