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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

바라는 대로

by 다오닝 2024. 3. 17.

네 인생은 나로 하여금 이루어졌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소하게는 목을 쓸어내리는 손짓, 손톱을 다듬을 때의 버릇 따위가 그러했고, 거창하게는 삶의 방식, 유연하게 난관을 넘기는 능력 따위가 그러했다. 목을 쓸어내리는 손짓은 본디 나의 것이었고, 손톱은 내가 예쁘다고 칭찬해 주었던 모양대로 다듬었다. 삶의 방식은 다르지만 나를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난관을 넘길 때에는 나의 당당한 태도를 참고했다. 모든 것은 필히 나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너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어느 세월을 보낸다.

열 살, 열 살이 되면 여를 배우러 오리.

다만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는다. 기다린 적 없다. 기대한 적 없다. 너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정도는 아니지만, 그 뿐. 단지 그 뿐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삶은 필히······

이렇다 할 정이 든 것도 아니건만, 네가 없는 나날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도 나를 찾으러 오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배우러 오지 않는다. 그깟 관심이라고 그리운 적 없지만서도 유독 쓸쓸하다고 느끼는 나날이 늘었다. 언제쯤 돌아오는 것인지 투정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 뱉으면서도, 아, 이것은 지루함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삶이란 본디 무료한 것. 그러므로 저절로, 눈을 뜨고 있다 한들 하등 즐거운 일이 없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장난감을 찾았던 것인데··· 이래서야 찾지 못한 것과도 같다. 당장 필요할 때에 없다니.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동시에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너를 그렇게까지 원하지 않는다, 나는. 되레 네가 나를 원해야 한다.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잠에 들면 될 일이다. 잠에서 깨어난다면, 분명 돌아와 있겠지. 그리고 그러는 동안의 지루함 또한 느낄 새 없게 된다. 좋은 꿈이라도 꾸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은 없겠지. 무기력한 나날의 종막을 위하여, 그렇게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네가 나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다.

열 살이 된 너는 나를 배우기 위해, 나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감히 홀로 살아온 나를 걱정하기 위해 나를 찾는다. 나는 그것을 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다. 네가 나를 찾는 것이 즐겁다.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이 즐겁다. 우리는 마치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아마 네가 몇 번을 되살아와도, 혹은 되살아오므로 끝나지 않을 숨바꼭질이다. 생을 건 놀이는 끝맺지 못하고 영영 서로의 발목을 붙잡는다.

꿈 속의 시간이 흘러 너는 나이를 먹는다. 한창 때라고들 부르는 젊은 나이에, 여전히 나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나는 꿈 속의 너에게 말한다. 너도 여가 느끼듯 이것이 재미를 충족해 준다고 느끼느냐.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너는 무심코 뱉는다. 언젠가는 찾아낼게요, 그 가능성만으로 저는 행복해요···

그래. 그렇다면 되었다.

어렴풋이 그것이 꿈이 아니라, 내가 잠든 세상의 일부임을 알았으나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이 숨바꼭질은 모두가 바라고 있는 일이니까.

문득 잠결에 느낀 것은, 뒤척이며 살짝 내려간 이불을 끌어올려 주는 다정한 손짓, 따듯한 이불의 촉감. 그리고 내 이마를 쓸어내려 주는 손길, 이내 온기. 주위를 청소하는 소리··· 일상적인 소음. 느리게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익숙한 천장, 그리고 뒷모습이다. 너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나는 대답했다.

어느새 많이 큰 모습이다. 꿈속에서 본 모습보다 조금 어리다. 벌써 다음생인가? 고민해 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물었다. 오래 기다렸느냐. 너는 대꾸했다. 저를 기다려 주신 만큼은 아니에요. 너는 한달음에 달려와 나의 손을 붙잡는다. 온기가 전해져 온다. 나는 무감한 듯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그래. 다시 나는 대답했다.

막연하게 알던 사실이 있다. 네가 나를 만난 시점의 나이 이래로 기억을 되찾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너는 나로 인해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일 테다. 운명적인 만남 따위가 아니다. 필연성의 신의 인도 따위가 아니다. 너와 내가 이룬, 족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것이 두렵지 않다. 우리는 결코 그것이 갑갑하지 않다. 우리가 되레 영영 바란 일이므로······ 기꺼울 뿐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정말로 세상은 돌아가고 있으며, 모두가 나아가고 있고,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기쁜 것일까? 좋은 것은 정말로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정말로 나쁜 것인가? 오랜 세월이 무뎌지도로고 살아온 나라고 한들 종종 이렇게 의문 따위가 고개를 내밀었다. 어차피 모든 질문은 심심풀이로 이루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심심풀이로 이루어진 질문에 몰두하여 오래도록 생각했다.

알고 싶다면 고백해야만 했다.

 

표섬서.

네.

나는 숨을 삼키고, 손을 뻗어 네 뺨을 어루만진다. 온기가 내게 기대온다. 너는 조심스레 눈을 감는다. 어떤 말이라도 달게 듣겠다는 듯이. 나는 그러므로, 네 오만한 그 태도를 이번에야말로 부수어 주기 위하여, 또한 너의 과오를, 온갖 실수를 뉘우치게 하기 위하여, 나를 쫓아온 모든 일을 후회하기를 바라며 발화한다. 그것 또한 재미있을 것 같았다. 표섬서. 재차 호명했다.

너는 후회한들 여를 벗어날 수 없다.

네, 알고 있어요.

말 그대로 죽어도 벗어날 수 없어.

괜찮아요. 그러기를 원했어요.

그러기를 원했다고? 역시 너는 건방지고 오만하다. 그런 네가 아주 얄밉고, 미우면서도··· 기특하니 왜일까······. 나는 그런 마음을 삼키고, 다시 뱉는다.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

 

그래서 네가 환생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이기에 너는 다시 태어난다. 우리가 여전히 우리로 남고 싶어 하였으므로, 여가 너를 여의 것으로 인정했으므로 너는 몇 번이고 거듭 태어난다. 그리고 다시 나를 찾아 오지. 네 의지 따윈 한 점 없는 이 모든 상황을, 너는 바랐다고 말했느냐.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냐.

 

너는 그제야 조금은 놀란 얼굴을 했다. 보아라! 나는 기쁜 기색을 감춘다. 그렇지만 너는 이내 웃었다. 다정하게 웃으면서 다시 내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뺨을 비빈다.

 

네. 매번 감사해요. 저를 바라 주셔서. 제가 이렇게 태어날 수 있게 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어요.

바보같은 소리다. 너도 알 테지.

조금 바보같아도 괜찮지 않나요?

···그래. 여가 꾸짖어 줄 테니. 바보같은 채로 여의 곁에 있어라.

물론이죠.

 

우리의 삶은 필히,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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