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아주 오래 간 바이크를 타고 내달렸다.
찬바람이 날카롭게 뺨을 스친다. 느리게 탁한 숨을 뱉으면, 뿌옇게 하늘로 사라졌다. 달칵이는 감각. 바이크가 빠르게 달리면서 덜덜거리다 몸도 덩달아 떨렸다. 이건 긴장감 탓인지도 몰랐다. 숨을 다시 들이켜면, 바다가 가까워진 탓에 소금기 서린 내음이 코를 찔렀다. 허리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끼익, 바이크가 삐걱이는 소리를 낸다. 여기서부터는 걷자.
계단이 나올 때까지 조금 걸었다. 자박거리는 걸음이 두 개, 침묵하는 입도 두 개. 바다 근처라 그런지 공기가 차갑다. 정적을 가르고 입을 열었다. 드디어 왔네. 응. 간결한 대답.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것으로 족했다. 더는 말 붙이지 않고 줄곧 걸었다.
표지판이 걸린 계단을 지나, 모래에 발 딛는다. 그렇게 모래사장에 도달한 이후로는 너 나 할 것 없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섰다. 엔헨 슈츠가 말했다. 간지러워. 나는 웃으면서, 응. 그렇네. 하고 동조했다. 다시 엔헨 슈츠가 말했다. 파도에 쓸려가면 어떡하지? 저 멀리에 둔 신발이 걱정된 모양이었다. 아직도 하는 고민의 범주라곤 조금 어린애같은 구석이 있다. 내가 너 들고 갈까? 짐짓 고민하는 체한다. 엔헨 슈츠가 내 옆구리를 살짝 툭 건드렸다. 장난치지 마, 하는 신호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턱을 가볍게 문지르면서, 진지하게. 하며 씨알도 먹히지 않을 변명을 한다. 모래가 살랑이며 발을 간지럽힌다.
근본적으로 묻고 싶은 것은, 우리는 어째서 바다를 그려왔는가였다. 탁하면서도 말갛고 아주 커다란 이 물웅덩이. 수많은 생명의 무덤, 지옥, 그와 동시에, 천국.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을 옥죄는 동시에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곳. 파도가 쓸려오면서 옷 끝자락이 축축해진다. 잠시 발을 멈추고 숨을 들이켰다. 생각이 턱 막히는데, 심장은 꿰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시원해진다. 어때? 뭐가. 기대했던 만큼 예쁘지? 마찬가지로 엔헨 슈츠가 숨을 들이킨다. 짧은 간극. 응. 예쁘다. 아주 간절한 소원을 빌 듯한 목소리가 먹먹하게 말했다.
발 담가 보자.
나는 엔헨 슈츠의 손을 끌어 그와 함께 바다에 발을 담근다. 축축한 소금물이 발목을 스치면서 간질거린다. 출렁, 출렁. 포말이 푸르르 튀면서 잦아들었다. 재차 파도가 치면, 나는 엔헨 슈츠의 손을 조금 더 잡아당긴다. 조금 더 깊은 곳까지 가도 될 것 같아. 가벼운 목소리에, 진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응, 고개를 끄덕이면 마지못해 나를 믿어 주는 모양이다. 물이 허리춤에 닿을 곳까지 걸음을 재촉한다.
다리가 붕 뜨는 감각이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더뎌진다. 무심코 더 걸으려던 나를 엔헨 슈츠가 저지한다. 이러다 빠지겠어. 나는, 알았어. 하며 걸음을 멈춘다. 파도 치는 간격에 맞추어 마음이 술렁거린다. 재차 묻는다. 우리는 어째서 바다를 그려왔는가. 아니, 나는 어째서 바다를 그려왔는가. 이제는 알 것 같아서······.
너는 바다를 담은 사람이야. 아주 조심스레 젖은 손을 올려 엔헨 슈츠의 뺨을 쓰다듬는다. 곧은 눈동자가 줄곧 내게 따라붙었다. 파도와 마파람에 옷자락이 속절없이 흔들거린다. 마음이라고 다를 바 없다. 바다에 선 우리는 흔들린다. 바다에 몸 담은 우리는 흔들린다. 나는, 흔들린다. 그것이 기껍다. 그야 너는 바다다. 너는 내게 있어 바다나 다름이 없다. 네게 흔들리고, 네게 젖고, 네게 시달리는 모든 것이 꺼려질 리 없다. 네 음성은 파도와 같고, 네 눈동자는 바다의 외형을 담았으며, 네 마음은 포말이다.
너는 이토록이나 바다를 닮아서, 내가 바다를 그리워하게 한다. 엔헨 슈츠가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쥐며 웃는다. 그것은 바다 위로 보이는 윤슬을 닮았다. 엔헨 슈츠가 속삭인다. 내가 이렇게나 아름다워? 손가락 끝으로 엔헨 슈츠의 이마, 콧잔등, 뺨, 턱 끝을 쓸어내린 나는 느리게 이마를 맞붙인다. 당연하지.
나는 아마 줄곧 바다를 그리워할 거야.
다시 오자. 그리워진다면 언제라도.
엔헨 슈츠의 담담한 말은 당연하다는 듯 나의 미래에 자신을 두었다. 옛적의 내가 그러했듯이. 그것은 아주 기쁜 일인데, 나는 도리어 울고 싶어졌다. 어린 날에 서로 간 해결하지 못하여 응어리진 감정은 쉽게 고개를 내밀었다. 건조한 눈은 눈물 한 번 뱉어낼 줄 모르고, 마른 입은 우는 소리 토해낼 줄을 모른다. 너도 이토록이나 애틋할까? 애틋해서, 그래서, 이렇게 울고 싶은 걸까?
···그래도 네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애틋하지 않아도 좋으니, 아프지 않고, 다만 나를 소중히 여겨 주기만 한다면 더 욕심낼 것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마를 부비적거렸다.
입맞추고 싶어.
나도 그래.
내 머리칼을 매만지던 손길로, 느리게 엔헨 슈츠의 귀를 쓸어내린다. 이마에 입맞추고, 콧잔등에 입맞추고, 뺨, 턱 끄트머리에 입맞추자 엔헨 슈츠가 재촉하듯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감질나···. 입가에 연신 소리나게 입맞추던 엔헨 슈츠가 나를 곧게 바라보았다. 나는 바다를 담은 그 무구한 눈을 바라보고 있자면, 한없이··· 죄를 사해지는 느낌이 든다. 신성하기까지 한 감각이다.
엔헨 슈츠의 눈 위로 젖은 손을 가져다댔다.
평생이란 무거운 말도 너라는 바다 앞에서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평생을 살아도 채워줄 수 없을 것 같다. 사는 동안에 평생을 바쳐도 모자랄 것 같다. 내게 있어 가장 처음인 사람, 네가 나의 바다라면 나는 너의 무엇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앞으로 평생은 그것을 고뇌하며 살 것 같다. 그러므로, 그러기 위해는 네가 삶에 없어서는 안 되었다.
엔.
응, 서.
긴 침묵이 인다. 나는 내 머리칼을 쓸어올리고, 엔헨 슈츠는 제 입가를 문지른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나는 몰랐다. 그래서 대뜸 뱉었다. ···사랑해. 엔헨 슈츠는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알고 있어. ······나도 그래.
그럼 나랑 평생 있어 줄 거야?
멀어지지 않겠다며.
떠나지 않는 것과 곁에 있는 건 다른 거지.
그럼 이렇게 해. 엔헨 슈츠가 손 뻗어 내 뒷목에 팔을 감았다. 순식간에 입이 틀어막힌다. 바다에 빠진 듯 먹먹한 음성이 귀를 쿵, 쿵 울린다.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나를 바라보는 곧은 눈이, 시리게 들어차서··· 차마 눈 감지 못한 채 받아들였다. 엔헨 슈츠는 느리게 입을 떼어내고는 말했다.
이렇게 붙어 있자. 줄곧 그러고 싶었어.
축축한 바다 향이 났다.
完.
'멍멍'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합리적인 삶, 그리고··· (0) | 2024.03.26 |
---|---|
바라는 대로 (0) | 2024.03.17 |
불가결한 (0) | 2024.03.03 |
모란꽃 핀 자리 (0) | 2024.03.02 |
사람은 마음이 원동력 (0) | 2024.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