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아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사람 귀찮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한나언. ······. 한나언, 한나언. ···. 한나언, 한나언한나언한나언. 왜 이러는 검까. 무시하니까 그렇지.
한나언의 대꾸가 돌아올 때까지 끈질기게 말을 붙이던 견아세가 히죽 웃었다. 지긋지긋하다는 듯 힐끔 쳐다본 한나언이 무심하게 대꾸하고는 노트북 타자를 계속해서 두드렸다. 아, 또 이상한 소리 할 것 같은 표정이길래. 저도 모르게 그랬슴다. 실수로라도 미안하다는 말은 붙이지 않는다.
“사거리에 카페가 하나 생겼던데.”
“아세랑은 안 감다.”
“안지나랑은?”
이건 또 무슨 속셈이지? 어느새 타자를 치던 손이 멈춘다. 견아세가 빳빳하게 코팅된 종이를 내민다. 받아들어서 확인하면, 카페 개업 기념 음료 한 잔 무료 이벤트 쿠폰이다. 문득 시선이 저 너머에 앉은 안지나에게로 향한다.
“친해지고 싶다며.”
그런 얘기까지 했던가? 그것은 차치하고.
······수상한데. 경계를 감추지 않고 드러낸 한나언이, 빳빳한 종이를 살짝 구기며 손에 쥔다. 수상하다는 것, 알고 있지만. 어차피 이런 것 없어도 안지나와는 어련히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의 친화력을 믿고 있지만.
카페 정도는 괜찮지 않나? 사람도 많을 테고. 견아세가 헛짓할 확률이야 높아도, 그것이 성공할 확률은 낮다는 소리다.
“이 쿠폰, 며칠까지임까?”
“내일.”
참 빨리도 줌다. 한나언은 손에 쥔 종이를 지갑에 챙겨 넣으면서, 무심하게 툭 던진다. 내일 다녀오겠슴다. 마찬가지로, 실수로라도 고맙다는 말은 붙이지 않는다.
이제 와 말하는 거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안지나로서는 그렇게 황당한 일이 없었다.
다짜고짜 말을 붙인 동기가, 대뜸 과제 이야기도, 단순한 안부도 아니라— 엉뚱한 소리를 해 온 것이다. 바쁨까? 지금? 왜? 아니, 내일 말임다. 약속은 없는데. 그럼 내일 여기로 오시는 검다. 뭐? 내가 왜? 뭔데? 당황하여 연신 같은 질문을 해대는 안지나에게 멋대로 깔끔한 통보 후 맑게 웃고는 떠난 한나언의 뒷모습을, 다음 수업 때문에 보내 줄 수밖에 없었던 안지나는 이제야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에야 멋대로 다가오는 애들도 많았다. 그러나 지기 싫어하는 그 성격 탓에 얼마 가지도 못하고 충고하거나, 부딪히거나, 그마저도 하지 않고 도망치는 애들이 수두룩했다. 한나언도 그런 부류 중 하나겠지. 말간 눈을 하고는 무구하게 빤히 쳐다보는 모양새나, 뭔들 직설적으로 말하고 궁금해하는 것만 보아도 알았다.
그러니 안지나, 오늘은 한나언을 두고 볼 예정이었다. ···그랬는데.
“영화는 재밌었슴까? 저는 이번에 주인공이 시작 때 친 대사랑 마지막에 친 대사가 수미상관으로 이어지는 게 좋았슴다.”
“···어? 뭐, 봐줄만했어.”
평범하게 놀았다.
안지나와 한나언은 영화관에 들러서 캐러맬맛 팝콘과 콜라를 사고, 흥미로운 스릴러가 가미된 추리 영화를 보았다. 스토리가 탄탄하여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를 납득되게 만든 것이 조잡함 없이 깔끔하여 좋았다. 이후에는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샌드위치를 입에 문 채로 노래방에 갔다. 샌드위치는 마지막에 재료를 다 넣은 채 식빵을 접어 살짝 태우듯이 구운 것이 포인트였는데, 맛이 담백하고 괜찮았다. 노래방에서 안지나는 무심코 남들이 잘 모르는 애창곡을 선곡했건만, 한나언은 노래에 제대로 호응하는 것이 알고 있는 눈치였다.
꼭 학생 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허나 그것도 곧 끝나게 될 것이다. 오늘이야 즐겁게 놀았다지만 줄곧 그러리란 확신은, 안지나에게는 없었다. 그러므로 오늘이 끝나면 오늘은 단지 오늘로 끝. 내일은 또 다시 평소와 같은 하루가 흐를 것이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어떻게 할 것이지? 안지나가 한나언을 빤히 바라보자, 한나언은 능숙하게 안지나를 끌어 사거리로 나갔다.
“이쪽에 새 카페가 생긴 것 암까?”
“그랬니?”
“거기가 식사도 가능하다고 해서, 괜찮으면 거기로 갈까 함다.”
“···뭐, 괜찮겠지.”
얼마 걷지 않아 핑크빛 가게가 모습을 드러낸다. ···좀 부담스럽지 않나? 싶은 디자인이다. 간결하게 말하자면, 과하다. 안지나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한나언은 그럼 그렇지, 하는 듯이 가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평범하게는 보였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다. 한나언이 문을 열고자 손을 뻗었다.
딸랑.
“오셨어요, 주인님!”
주인님?
어리둥절한 안지나가 고개를 휙 쳐들자, 당혹스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핑크빛, 혹은 하양, 검정 따위의 색으로 이루어진 일명 메이드복을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들이 잔뜩 서 있었다. 몇 명은 머리 위에 고양이 귀 핀을 꼽거나 머리띠를 쓰기도 했다. 메이드복은 짧은 것도 긴 것도 있고, 디자인도 제각각이었으며, 화장은 눈매를 순하게 만든 화장법이 다수였다. 대개 귀여워 보이려고 아득바득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안지나와 한나언의 다른 동기인 견아세도 있었다.
견아세는 유독 커다란 키에, 옅은 화장을 하고 있어 눈에 띄었다. 입고 있는 메이드복은 기장이 기다랗고 프릴이 작았다. 검정색 바탕에 흰색이 포인트로 섞여 있었으며, 허리춤에 앞치마가 커다란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화장은 아주 조금 손을 본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순해 보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아 더욱 날카로워 보였다.
귀여운 여자들 사이에 우뚝 선 귀염성 없는 여자 한 명.
견아세가 냉큼 안지나와 한나언에게로 다가와 재차 인사했다.
“오셨어요, 주인님.”
“이게 뭠까, 아세?”
“일일 알바예요, 주인님께 봉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그런 말까지 한단 말이야? 한나언이 주변을 쓱 훑어보니 어째 쟤가 왜 저러지, 싶은 표정으로 다들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대하면서 일한 게 분명했다.
이래서 준 거였구나. 당했다···.
이런 카페였을 줄이야 당연히 몰랐고, 그곳에서 일일 알바 따위를 할 줄이야 더욱 몰랐다. 이런 꼴을 하고 있는 주제에 안지나까지 부른 건 대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한나언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를 잡았다. 들어온 이상 그냥 나가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실례였다.
“지나, 이쪽으로 앉겠슴까?”
안지나는 말 한마디 없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다가, 털썩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한나언이 맞은편에 앉자마자, 곧장 몸을 기울여 한나언에게 가까이 붙은 채 속삭였다.
“이런 거 좋아하니?”
“그런 거 아님다. 저도 속았슴다.”
안지나에게 단호히 대꾸한 한나언이 불퉁한 표정으로 메뉴판이나 뒤적였다. 식사 또한 주문이 가능하다는 것은 사실이었던 듯이, 메뉴가 꽤나 있었다. 그중 눈에 띈 것은, 스페셜 오므라이스. 한나언이 그것을 가리켰다.
“저는 이거 하겠슴다.”
“어? 어, 그럼 나도 그걸로.”
이런 곳에 처음 온 것 치고, 한나언은 이상하리만치 태평했다. 그에 되레 당황했던 안지나마저 오기가 들었다. 이깟 곳에서 질 수는 없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다짐하는 안지나를 두고, 한나언의 생각은 간단했다. 견아세 미친 새끼.
“음료는 아이스티랑, 딸기 라떼로 부탁함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주인님.”
부러 얌전하게 구는 견아세를 보면서, 한나언이 어처구니가 없어져 히죽 입매를 올렸다. 안지나는 눈썹을 꿈틀이고는 툭 물었다.
“이런 곳, 자주 와 봤나 봐?”
“그건 아님다.”
“그러면?”
대꾸할 사유가 너무 많아 신중하게 대답을 고르던 한나언이 떠올렸단 듯 고개를 까딱였다.
“제가 지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슴다.”
“···뭐? 그, 그래? ······그래서?”
“그걸 아세가 들었슴다.”
“그게 뭐?”
“아세도 지나한테 관심 가질 거란 뜻임다.”
“그러니까 그게 왜? 뭔데? 무슨 상관인데. 말을 똑바로 좀 해 봐.”
“지나도 곧 알게 됨다.”
저 자식이 어떤 자식인지···부터 시작해서, 내가 왜 이깟 일에 익숙해 보이는지. 한나언이 식은 눈빛으로 견아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견아세의 평판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제 동기나 교수님들께 싹싹하게 잘할 줄 알았으며, 나름의 친화력을 지니고 있어 누군들 적당히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능숙했다. 사람들을 두루 잘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미친 사람이 많았으니까. 그중 하나가 견아세라는 것은, 솔직히 동기들에게 있어서야 믿기 어려운 일일 테다.
안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런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이 마냥 제정신같지는 않았지만, 본인 입으로 일일 알바라고 그랬다. 하루 쯤 체험하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할 관심종자들이 종종 있었다.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견아세가 그런 사람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관심종자가 모두 나쁘다는 것은 편견이었으니까. 그 정도야 괜찮았다.
하지만 한나언의 말을 듣고 있자면 기분이 묘했다. 한나언이 보는 견아세는 어떤 사람인가? 뭐가 어쨌건 끔찍이도 귀찮아 하고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다. 지금, 이토록이나 놀려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니까.
이윽고 따끈한 오므라이스와 시원한 아이스티가 안지나의 앞에, 다른 오므라이스와 딸기 라떼가 한나언의 앞에 놓인다. 그것들을 모두 한 번에 양손으로 들고 온 견아세가 시원스레 웃었다.
“주인님, 케찹으로 그림을 그려드리려 하는데. 어떤 걸 그려드릴까요?”
“여우로 부탁함다.”
한나언이 환하게 웃고는, 덧붙였다.
“맛있어져라~하는 주문도 부탁함다.”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나요?”
사근사근한 견아세의 말투에 안지나가 짧게 움찔였다. 그런 거 몰라! 경악으로 물든 표정의 안지나가 버벅거리다 퉁명스레 뱉는다.
“아무거나 알아서 해 봐.”
“네, 고양이를 그려드릴게요.”
견아세는 가볍게 대꾸하고는 케찹을 들어서, 한나언의 오므라이스 위에 그림을 그렸다. 솔직히 솜씨는 영 별로였다. 못생겼어. 한나언과 안지나는 생각했다.
“맛있어져라~ 두근두근 쿵♡”
“혹시 못생겨지라고 주문 건 거 아님까? 아세. 똑바로 안 함까?”
“이게 최선인데요 주인님.”
“메이드가 싸가지가 없슴다. 다시 그려 주세요.”
“아이 참. 그러지 마시고 맛있게 드세요. 먹여 드릴까요?”
“아···.”
노골적으로 탄식한 한나언이 부러 그림을 헤집으며 오므라이스를 푹 떠서 입에 넣는다. 볼이 빵빵해진 채 우물거리고 있자니, 견아세가 안지나 쪽을 돌아보았다.
“자 그러면, 같이 해 주실래요? 맛있어지는 주문.”
“뭐?”
안지나는 견아세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 이건 미친 걸까?
“시···싫어!”
“사양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맛있어지는 주문을 외치지 않으면 오므라이스는 맛있어질 수 없어요. 자, 식기 전에 어서. 같이 해요. 하나, 둘,”
숫자를 세는 견아세를 멀뚱히 짜증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견아세가 얌전히 생글생글 웃으면서 혼자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아이 참. 힘이 부족한가, 맛이 덜 된 것 같은데.”
“아세. 그러다 테니스의 손힘으로 처맞슴다.”
“두근두근 쿵♡ 맛있게 드세요 주인님.”
손으로 하트를 만들고는 빠르게 내뺀 견아세를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바라보고 있자면, 한나언이 어서 먹어보라며 우물거린다.
입에 넣은 오므라이스는 제법 맛있었다. 따끈한 계란, 야채가 물렁하게 뭉개지는 볶음밥. 아이스티는 딱 적당한 정도의 단맛으로 입을 정리했다.
“잘 먹었슴다.”
“잘 먹었어.”
계산대로 다가가자, 어째 또 견아세가 서 있었다. 한나언은 익숙하다는 듯 쿠폰과 함께 결제했다. 지나, 돈은 여기로 보내 주면 됨다. 하고 카톡을 보내오는 한나언을 보면서, 견아세가 태평하게 물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맛있었슴다.”
“맛은 괜찮던데.”
“만족하신 듯하니 저도 기쁘네요, 주인님. 부디 조심히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인사는 또 왜 이래? 의문이 생기지만 모두가 삼킨다. 솔직히 더는 이 부담스러운 공간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다.
염병 첨병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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